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싶다. (최영기 목사)

2025-11-02

전도를 하다 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.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에게도 비슷한 욕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. 하나님께 당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했습니다(출 33:18). 건방진 요구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않으시고,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. 그런데 뒷모습만 보여주셨습니다 (출 33:18-23). 왜 뒷모습만 보여 주셨을까?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시기 때문에 작디작은 인간이 그 모습을 정면으로 보았다가 영광에 압도되어 죽을까 봐 그러셨을 것입니다.

하나님은 인간의 사고와 이해를 초월하는 분이십니다…하나님의 모습을 아무리 아름답고 위엄스럽게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다 해도 그의 온전한 모습을 보이기에는 절대적으로 미흡합니다…. 그림이나 조각 뿐 아니라 언어도 그렇습니다.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, 하나님의 총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는 없습니다.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왜곡시키고,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. 이것이 신학적 논리와 언어의 한계입니다.

이처럼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인간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. 그랬기 때문에 제자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. “빌립아,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.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‘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’ 하고 말하느냐(요 14:9)?”…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.

죽음이라는 관문을 지나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.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시기 때문에 천국에 가서도 점점 더 알아가야 할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. 더 많이 알면 알수록, 더 많이 사랑하게 되고 경외하게 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.

이 세상에서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. 그러나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. 이것은 순종을 통해서 가능합니다.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좇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아버지를 나타내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(요 14장). 순종 가운데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, 언어로는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, ‘하나님을 안다’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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